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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먹고, 그냥 일하고, 자고 끝이 아니라 맛있는 걸 먹고 싶고, 일을 또 굳이 잘하고 싶고, 같은 값이면 푹 자고 싶은 이런 것들, 굳이 뭔가 더 해 나가는 것들에서 우리는 즐거움을 찾는 게 아닐까요."
소설가 송지현(38)에게 '굳이 더 하는 행위'는 쓸데없는 수고가 아니라 삶을 더 삶답게 만드는 태도다. 최근 울산hk저축은행 출간한 소설 '오늘은 좀 돌아가 볼까'에서 등장인물들이 굳이 귀찮은 산책에 나서고, 일부러 먼 길을 돌아서 오래 걷는 이유도 여기 있겠다.
여성이고 비혼이자 백수인 소설 속 '나'는 동거인 '민수'와 저녁 무렵이면 동네 산책을 나간다. 공원에서 줄넘기를 하고 오이를 오독오독 씹어 먹는다. 소란 없는 평범한 일상을 산다. 최근 한국일보와 한국장학재단 채용 만난 송 작가는 "어떤 사건이나 겪지 않은 일에 시선을 두기보단 삶과 밀착된 소설을 정말 좋아한다"며 "실제 삶에 가까워질수록 이야기가 진짜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소설이 하나같이 사건 전개나 결말에 구애받지 않고도 완성되는 이야기들인 까닭이다. 이번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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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돌아가 볼까·송지현 지음·다산책방 발행·164쪽·1만5,000원



빙 둘러 가는 길에서 새로이 발견하는 즐거움
"저에게는 이것이 곧 하이퍼 리얼리즘이니까요." 위기나 절정 없이도 삶의 역설은 드러나기 마련. 송 작가는 "나쁠 거라 ibk기업은행 잔액조회 여겼던 일이 뜻밖에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지 않느냐"며 "주인공과 민수는 회사에서 잘린 뒤 불안해하지만 오히려 맛있는 오이도 먹고 건강해지는 저녁을 보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가 그린 청춘들은 백수가 될지언정 과로하지 않는다. 아주 조금의 책임만 져도 되는 일을 하며 살기를 원하고, 소소한 행복으로 소소한 불행을 상쇄하려는 태도를 고수한다. "일을 대전파산신청 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불안이 사라지는 건 또 아니니까요. 안정을 얻더라도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힘든 마음을 가질 수도 있고요. 이런 양가적인 면을 균형 있게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좀 돌아가 볼까'는 2022년 발표한 단편소설 '김장'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할머니 집에서 방학을 보냈던 자전적 경험을 쓴 단편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통과하는 계절별 연작처럼 늘려 썼다. 2013년 데뷔 이후 줄곧 단편만 써왔던 작가가 처음 쓴 긴 호흡의 글이다. 그는 "덜어내는 것만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며 "(이번에 경장편을 써봤더니) 할 말을 다 넣고, 많이 보여줘도 괜찮구나 싶어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송지현 작가는 "등단 직후 계약한 책을 10여 년 만에 드디어 내게 됐다"며 "매일 하루 세 번 안부 메시지를 보내면서 마감을 독려한 담당 편집자 덕분"이라고 했다. 정다빈 기자



심심한데 재밌다… "웃긴 사람이 내 추구미"
가족 중에 회사고 가게고 아무 데도 안 가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나'는 할머니의 김장을 돕기 위해 시골집에 내려가게 된다. 김장 다음 날엔 묵은지로 김치만두를 빚어 먹는다. 실제 작가의 경험이기도 하다. 그는 "집에서 만두 만드는 과정이 진짜 까다롭다"며 "어떤 음식은 사 먹는 게 편하고, 누군가 만들어 주는 걸 먹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 타인에게 기대어 조금씩 나누며 살아가는 방식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인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2021)을 쓸 때부터다.
"원래 먹는 데 별 관심이 없었는데 동생과 2년 잠깐 같이 사는 동안 '오늘 뭐 먹지' 이런 얘기 하면서 뒹굴뒹굴하는 게 삶의 행복이구나 깨달았어요. 시간을 정해 같이 먹는다는 게 단순히 생존을 위해 때우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거죠." 맛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갖게 된 이후 그는 소설 속 인물들을 든든하게 먹인다.
주인공은 김장하고 만두 빚고, 김밥 말고, 초당옥수수 쪄 먹으며 사계절을 나는데, 그 모습이 수상할 정도로 재미있다. 송 작가는 "오늘 덜 웃겼다 싶으면 집에 가면서 '아, 그때 그 드립(농담)을 쳤어야 했는데' 곱씹을 정도로 웃긴 걸로 주목받고 싶은 사람"이라며 "그게 내 추구미"라고 했다.



송지현 작가가 '오늘은 좀 돌아가 볼까'를 썼던 경기 부천시 한 아파트의 작은방. 송 작가는 "10세인 반려묘 보리와 좀 더 오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무조건 집에서 작업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다산책방 제공



한 편의 소설, 그리고 소설가의 책상
소설은 다산책방의 한국문학 시리즈인 '다소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조해진의 '여름밤 해변의 무무 씨', 박민정의 '작가의 빌라'와 함께 동시 출간됐다. PVC 커버를 씌운 120X185㎜ 판형의 '작고 짧은 책' 콘셉트. 책 말미에는 소설을 쓰는 동안 쓴 일기와 작업실 사진이 같이 실려 있다. 독자와 쓰는 사람 간 거리를 좁히기 위한 의도다. 방학 숙제를 늘 개학 전날 하던 것처럼 마감 직전에야 일기를 쓰고 있다는 작가가 "마감을 해야 한다" "마감은 진짜 진짜 내일부터!"를 외칠 때는 내적 친밀감이 샘솟는다. 곽수빈 다산책방 편집자는 "가벼운 볼륨으로 최대한 자주 독자들을 찾아가려 한다"며 "다음 달쯤 시리즈의 4, 5번째 책이 동시 출간 예정"이라고 했다.



다산책방이 펴내는 '다소 시리즈' 1~3권으로 동시 출간된 조해진의 '여름밤 해변의 무무 씨'(왼쪽부터), 박민정의 '작가의 빌라', 송지현의 '오늘은 좀 돌아가 볼까'. 다산책방 제공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